단념하듯 봄눈 내린다.
가로수들이 속죄하는 모습으로
눈을 맞으며 서 있다 아직
집에 닿지 못한 길들이
새로 갈리며 세상을 넓힌다
추억이 많은 길들은 적막하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약속도 없이
벌어지고 또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는가 때늦어 당도한 눈발들은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하루살이처럼 떠돌며 망각을 부른다
높은 가지 끝에서 찬란한 빛으로 소멸하는
한 점 눈발을 두고서 나는 이제
다른 예감을 품을 수 없다 언젠가
때가 오면 띄어야 할 訃告가
내게도 있다는 걸 알 따름이다
한 번 갈린 길들은 결코
되돌아올 줄 모른다 나는
세월보다 빨리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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