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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외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고란이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

POEM 2025.12.02

시치푸스 사랑법- 김인육

시지푸스 사랑법​ 김인육​​내 푸른 날은 꽃피울 것이 너무 많아별도 바람도 햇살도 빗물도팔 벌려 껴안고 싶었네벌판에 선 나무처럼​허나, 운명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베토벤처럼 나를 울게 하였네폭풍의 언덕처럼 나를 찢고 할퀴었네계절 뒤에 계절이 지고기억 뒤에 기억이 덮이고길 잃은 시간은 여윈 손가락을 땅에 떨어뜨렸네​별도 바람도 빗물도 햇살도 변함이 없었으나나의 질문만은 늘 그대 앞에서 길을 잃었네쿵, 산정에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졌네산마루에 숭숭 뚫린 가슴을 걸어두고뜨거운 간을 날마다 쪼아 먹혀야 했네​사랑아,너는 나의 갈망이었으나가도 가도 허망한 신기루였노라영혼까지 쪼아 먹히는 신화의 간이었노라밀어 올려도 밀어 올려도다시 굴러 떨어지는 절망의 바위였노라​​

POEM 2025.11.04

올인- 김인육

그녀는 내 밥이었다이 세상의 처음에서부터그녀는내 것이었다, 내 먹이였다단 한 번도 거역하지 않은 착한 밥보시바라밀이었다내가 철없이 세상으로 달려나가다허방에 거꾸러져 신음할 때나를 안고서나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울었던 것도 그녀였다밥이 아닐 땐 돈이었다나의 영원한 호구, 돈주머니였다그녀를 팔아 대학을 다녔고그녀를 쥐어짜서 아파트를 장만했다그러는 동안, 세상은 그녀를아주-머니라 부르기도 했고할-머니라 명명하기도 했지만나는 내 식대로 내 멋대로어, 머니!오, money!호기롭게 불러 제꼈다이제는 오래되어, 먹지 않는 밥낡고 해어진, 몹쓸 주머니백발치매의 병주머니 우리 엄마가엾은 내 밥!어-머니!

POEM 2025.11.04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지음 질량의 크기와 부피는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뉴턴의 사과처럼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POEM 2025.11.04

가을의 비망록- 김인육

가을의 비망록/ 김인육​​최후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다​서늘한 눈매로 서 있는 가을 나무는​ ​지는 해 저녁놀 곱게 물들이듯​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싶은 것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하지 않은 자​​어디 있겠고​ ​마침내 결별이 아프지 않은 자​​어디 있겠는가​노랗게 혹은 발갛게 울음의 색깔을 고르며​​불꽃처럼 마지막을 타오르고 있다​ ​빛나는 한때를 간직한 가을 나무는​알고 있다​ ​하나 둘 떨구는 이파리마다​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막막한 절망을 지워 가는 법을​그 간절함의 빛깔로​​ ​눈 감아도 선연히 되살아 오는 얼굴들​가슴 깊숙이 나이테로 새겨 두는 법을​​.[출처] [공유] 가을의 비망록/ 김인육ㆍ낭송 이교수|작성자 그대 그리고 나

POEM 2025.11.04

후레자식- 김인육

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애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POEM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