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관련 잡동사니

삼성의 고민

poongkum 2014. 6. 21. 01:50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갑작스러운 부재(不在)는 해당 조직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된다. 지도력의 진공 상태는, 내부의 분란을 조성하면서 외부의 약탈을 조직 내로 끌어들인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후의 애플이 그랬다. 잡스 생전에 애플의 사내 유보금은 1400억 달러(약 143조5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 돈을 주로 연구개발과 다른 기술업체 합병에 투자했다. 주주들이 원하는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기업이 사내 유보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주가가 올라 주주들에게 이익)’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당시의 애플은 신제품의 글로벌 메카였다.

잡스 사후에는 상황이 180° 바뀐다. 애플은 2012년, 창업 17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을 실시했다. 이후 2년 동안 1000억 달러를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주주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물론이고 애플로부터 한 해 수백억 달러를 빨아낼 수 있는 채권을 내놓으라고 했다. 애플은 아이폰5 이후 별다른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div>2012년 7월29일 런던올림픽 수영 경기를 관람하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 이부진·이서현·이재용 삼남매(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도 자리에 함께했다.
2012년 7월29일 런던올림픽 수영 경기를 관람하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 이부진·이서현·이재용 삼남매(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도 자리에 함께했다.


지난 5월11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혈관 확장 시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다. 미국의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5월15일자에 “일부 투자자들은 이건희 회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경우, 삼성이 상대적으로 박했던 ‘주주 이익 환원’을 재고(再考)할 것이라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동안 삼성은 사내 유보금 600억 달러(약 61조5000억원)를 장기 성장에 필요한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투자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편이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이건희 회장 유고(有故) 시 삼성전자가 배당 및 자사주 매입을 늘릴 것으로 기대하면서 삼성전자 주식을 추가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주가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인 5월9일 133만5000원에서 5월16일 142만8000원으로 오히려 치솟았다.

이건희 일가가 실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전문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룹 전체 시가총액의 5~7%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일가’가 전체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복잡하게 얽힌 출자구조 때문이다.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의 전체 혹은 일부를 소유하는 ‘소유권 사슬’이, 지배권을 ‘일가’에 몰아주었던 것이다.
이 ‘소유권 사슬’의 축은 ‘이건희 일가→에버랜드→삼성생명’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지분구조다.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건희 일가의 지배력은 막강하다. 특수관계인(‘일가’와 삼성 계열사)의 지분이 각각 62.6%(에버랜드), 51%(삼성생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삼성생명 이하의 ‘소유권 사슬’은 취약한 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물산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전자·카드·물산은 우회하면서 상호 간의 지분을 가지는 방식으로 이건희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만 봐도 그 지배권의 밀도는 에버랜드·삼성생명에 비해 매우 박약하다(아래 <그림> 참조).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취약한 세 가지 이유


예컨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으로 지분율은 7.71%다. 그 다음은 삼성생명(7.2%)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5월14일 종가 기준으로 208조4285억원(삼성생명은 19조4400억원)이다. 주당 가격이 워낙 비싸서 지분을 많이 갖기 힘들다. 3대 주주는 삼성물산(4.1%)이고 그 다음이 이건희 회장(3.4%)과 삼성화재(1.26%)다. 이 회장 부인 홍라희씨 등의 지분을 합치면, 이건희 일가의 지분은 모두 4.8%에 이른다. 종합하면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모두 17.6%다. 삼성전자처럼 ‘비싼’ 기업의 17.6%를 보유하고 있다면 ‘일가’의 경영권 역시 꽤 안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상황이 바뀌었다.


첫째, 계열사 간 출자구조에 대한 법적 제약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소유권을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식으로 돌려서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순환출자’가 앞으로는 금지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 구조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다른 기업의 주식 보유 및 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그 밑으로 기업들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에버랜드가 법률상 지주회사로 전환된다면,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의 다수 지분을 소유해 자회사로 편입시켜 지배하게 된다. 자회사는 다른 자회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 지주회사 체제로 가려면, 계열사끼리 지분을 팔고 사고 옮기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이건희 일가의 지배권에 더욱 치명적인 것은 금산분리 강화 추세다. 여기서는 금융지주회사(금융사들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가 일반 제조업체들을 자회사로 편입할 수 없다. 일반지주회사(금융회사를 제외한 일반 제조업 및 서비스 기업들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 역시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이건희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금융사인 삼성생명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에 보유한 7.2%의 지분에 기반하고 있다. 한동안 삼성그룹의 개편 시나리오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그 자회사로 삼성전자를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2일, 국회 정무위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소유할 수 없게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건희 회장 유고 시에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의 1대 주주(20.76%)다. 2대 주주는 19.34%를 보유한 에버랜드다. 이건희 회장 유고 시 에버랜드는 자동적으로 삼성생명의 1대 주주가 된다. 금융회사인 삼성생명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로 법인 형태가 변경되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7.2%)을 떨어내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을 이건희 일가나 계열사들이 사들일 수 있다면 경영권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매우 비싼 기업 중의 하나다. 7.2%만 해도 현금으로 14조~15조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삼성생명이 전자 지분을 그냥 내다팔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이건희 회장의 부재 가능성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재산은 삼성전자 3.4%(6조7000억원), 삼성생명 20.76%(3조9000억원), 삼성물산 1.37%(1조4000억원) 등 모두 11조9000억원에 이른다. 이 재산이 그대로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에게 상속되면, 현재의 지배력(금산분리 강화 등에 따른 소유구조 재편이 없는 경우)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남매는 상속세 50%를 내야 한다. 11조9000억원의 절반인 6조원 정도가 현금으로 필요하다.

최근 삼성그룹의 행보에는 이런 난관에 대비해 사업 구조조정을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지난해부터 IT 부문에서는 삼성SDS와 삼성SNS, 중화학 부문에서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등을 합병했다. 다른 한편으로 삼성전기, 삼성화학 등 제조업 부문 업체들은 삼성생명 지분을 처분하기로 했다.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보유해왔던 삼성카드 및 삼성자산운용 지분을 이미 삼성생명에 매각했다. 계열 제조업체들이 금융사 지분을 삼성생명에 몰아주는 것이다. 한편 삼성생명은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등 계열 금융사의 지분을 매집하면서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제조업과 금융업의 분리, 그리고 삼성생명 밑으로 금융사들을 몰아주는 흐름이 보인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한다는 시나리오가 한때 유력하게 대두되었다.

주식 사들여 지배권 유지하려면 14〜15조 필요


또한 삼성 측은 비상장기업 삼성SDS를 연내 상장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경영권 승계의 전초 작업으로 간주된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삼남매가 따로 19%를 가지고 있다. 삼성SDS를 상장하는 경우, 삼남매는 자신들의 지분을 팔아 2조~3조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남매가 쥐게 될 2조~3조원은, 그룹 재편에 필요한 자금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이다. 상속세의 절반 정도를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때 이를 사들여 지배권을 유지하려면 14조~15조원이 필요하다.

>5월14일 삼성그룹 사장단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font></div>5월14일 삼성그룹 사장단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추가자금 없이 지배권을 유지하는 묘안이 있다. 이른바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지배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인적 분할’이라는 마술 참조). 키움증권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최근 <삼성그룹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 라는 보고서를 통해 삼성그룹이 인적 분할로 ‘삼성전자 홀딩스(지주회사)’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로 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시가총액 200조원 정도의 삼성전자가 인적 분할로 ‘시가총액 60조원 상당의 지주회사(삼성전자 홀딩스)’와 ‘137조원 규모의 사업회사(상장 이후 시가총액이 150조원 규모로 상승한다고 가정)’로 분리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삼성전자의 자사주 비율은 11.1%이고,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17.66%다. 이에 인적 분할을 적용하면, ‘일가’ 등 특수관계인들의 삼성전자 홀딩스 지분율이 무려 42%로 상승하게 된다. 사업회사에 대한 홀딩스의 지분율도 28%에 이른다. 꽤 안정적인 구조다.

그러나 특수관계인 중에 금융회사인 삼성생명(17.6%)과 삼성화재(3.1%)가 있다(기자가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본 결과, 이건희 일가만의 지분율은 종전의 4.8%에서 11.7%로 늘어날 뿐이다)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지분은 인정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일가’와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40%를 삼성전자 홀딩스의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로써 일가·에버랜드는 홀딩스 지분을 추가 보유하는 반면 홀딩스 역시 삼성생명 지분을 갖게 된다. 그 다음 삼성생명이 홀딩스 지분을 모두 매각(이 중 일부를 일가·에버랜드가 취득)한 다음 홀딩스와 에버랜드를 통합 지주회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박 애널리스트의 견해다. 이 경우, 일가의 홀딩스 지분율은 25%로 늘어난다. 한편 현재(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보유)와는 반대로 삼성전자·에버랜드 홀딩스는 삼성생명 지분을 40%나 갖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도 역시 한계가 있다. 어렵게 삼성전자·에버랜드 홀딩스가 만들어지더라도 삼성생명을 거느리게 되기는 힘들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설사 인적 분할 방식을 동원한다 해도 금산분리의 벽으로 인해 ‘일가’가 그룹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지주회사 틀 안에서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이에 따라 제시되는 대안이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다. 예컨대 삼성전자·에버랜드 지주회사가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를 거느리게 허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간금융지주회사 내부에서 운용되는 자금을 일반지주회사로 이동시킬 수 없도록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GM이나 월마트 같은 그룹들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경제민주화의 그나마의 성과인 금산분리를 해치게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유지되거나 흔들리는 경우들이 전체 국민경제에 미칠 손익을 면밀히 그리고 현실적으로 따지면서 재벌 문제에 대한 전망을 세워나가야 할 시기가 왔다. 이건희 회장은 5월16일 현재 6일째 삼성서울병원에서 수면 상태로 진정치료를 받고 있으며, ‘호전설’과 ‘위독설’이 함께 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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