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일

전지

poongkum 2008. 6. 19. 20:04
가장 먼저 전지를 발명해낸 사람으로는 단연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로 볼타(1745∼1827)를 들 수 있다. 그가 처음 발명해 널리 알려진 전지는 그 후 '볼타 전지' 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물론 그의 이름은 오늘날 전압을 재는 단위 '볼트'로 전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코모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고교 교사를 하다가 1779년에 파비아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물리학 교수였던 그에게 1791년 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생물학 교수 루이기 갈바니(1737~1798)의 실험 보고가 전해졌다. 그 보고를 읽고 볼타는 깜짝 놀랐다. 개구리 실험을 통해 개구리 근육 속에서 전기가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갈바니의 실험이 동물에서 나오는 '동물 전기'를 단정하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 그는 실험을 거듭하여 그것이 동물 전기라기보다는 금속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을 다만 동물의 수분이 매개했음을 알게 되었다.

후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랜 연구를 거듭한 볼타는 1800년 3월 20일 영국왕립학회에 편지를 내어 그의 전지 발명을 보고했다. '볼타 전지'의 발명이 세상에 정식으로 알려진 것이다.

갈바니와 볼타, 이 두 이탈리아 과학자들의 활약은 전기에너지를 실용화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은 가장 대조적인 일생을 살았던 것으로도 길이 기억될 만하다. 원래 갈바니는 볼로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교수의 딸과 결혼하고, 그 대학의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갈바니1786년 그의 아내 루치아가 병에 걸리자 그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개구리 요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개구리고기가 허약한 몸에 아주 좋다고 널리 인정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는 개구리 다리에 금속 칼날이 닿으면 마치 개구리가 살아있는 듯이 경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닭의 신경 등을 연구하던 동물 신경계 전문이었던 갈바니에게는 그것은 개구리 몸 안에 전기가 있다가 도선을 연결해주면 나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동물 전기'란 말이 그 후에 유럽 사람들에게 일대 유행을 하면서 갈바니의 이름은 크게 유명해졌다.

동물의 전기에 대한 효과 등을 갈바니즘(Galvanism)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그의 이름은 전류계(電流計, galvanometer)라는 이름에도 사용되기도 한다.

그가 11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자 유럽 과학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동물 전기를 더 연구하고 이용하려고 나섰던 적이 있을 지경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갈바니의 '발견'에 대해서는 당대 유럽에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켜 그에 얽힌 개구리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각색되어 널리 퍼지기도 했다.

그의 부인에게 개구리수프를 만들어 주려다가 갈바니 스스로가 이런 현상을 발견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부인 루치아가 남편의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만지다가 이를 처음 발견했다는 설도 있었다.

다른 설로는 원래는 부부가 이를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라, 갈바니의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이를 처음 발견해 교수에게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개구리 실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1883년에는 이미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漢城旬報)에도 그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 소개되기로는 그의 제자 몇 명이서 1790년 이를 처음 발견했다고 되어 있다. 다 알다시피 이 신문은 순한문이다. 중국에서 소개된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선의 신문에 그대로 옮겨 인쇄한 순한문 기사이다.

바로 이 개구리에 얽힌 '동물 전기' 발표에 자극받아 전기 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이 같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였던 셈이다.

볼타는 갈바니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그는 갈바니 전기를 비판적으로 실험하며 차츰 그 전기는 개구리 자체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가지 금속 사이에 개구리 다리가 끼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즉 '동물 전기'가 아니라 금속 사이의 '접촉 전기'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볼타의 실험그는 자신의 발견을 바탕으로 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구조물을 만들어갔다. 은판과 아연판, 그리고 그 사이에 소금물을 적신 헝겊 같은 것을 번갈아 12겹 가량 쌓아 놓음으로써 이 장치에서 전기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1800년 3월 20일 볼타가 영국왕립학회에 보고한 논문은 바로 이 발견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전지 발명은 당장 유럽의 최고 관심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영국왕립학회는 그에게 가장 영예로운 '코플리 메달'을 수여했고, 프랑스의 새 지배자가 된 나폴레옹은 그를 파리에 초청하고 직접 금메달을 주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이미 그 전에 나폴레옹이 그의 고향지방을 점령하여 프랑스 지배하의 북부 이탈리아 공화국을 만들었을 때 이미 여기 협조하여 귀족으로 백작이 되고 연금을 받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1799년 나폴레옹이 한때 밀려나자 볼타 역시 조금 어려움을 겪었지만, 곧 나폴레옹의 영향이 이탈리아에 미치자, 그는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하튼 그는 전지 발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나폴레옹을 지지하여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셈이라고도 할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전지 발명의 힌트를 주었다고 할 수 있는 갈바니는 바로 나폴레옹의 간섭과 그로 인한 프랑스 하의 괴뢰 공화국에 충성하기를 거부하여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교수직을 내놓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말년을 외롭게 살았으며, 그의 아내 루치아는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먼저 죽었다. 비록 갈바니와 볼타, 두 과학자의 과학상의 공헌은 함께 설명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큰 것이지만, 그들의 속세에서의 운명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점도 있었다 하겠다.